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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일부로서의 죽음: 몽테뉴의 성찰

by 무던이야 2025. 5. 26.

 

시작하며: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까요?

누구나 한 번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죽음은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삶의 끝,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소멸... 이러한 이미지들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가능한 한 외면하고 싶은 주제가 되곤 합니다. 하지만 16세기의 위대한 사상가 미셸 드 몽테뉴는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오히려 삶을 깊이 이해하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중요한 열쇠로 보았습니다. 그의 역작 『에쎄』(Essais) 곳곳에 담긴 죽음에 대한 성찰은 오늘날 불안 속을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몽테뉴는 왜 그토록 죽음이라는 주제에 천착했을까요? 그리고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몽테뉴의 시대와 개인적 비극: 죽음 성찰의 배경

몽테뉴가 활동했던 16세기 프랑스는 그야말로 혼돈의 시대였습니다.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처참한 종교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이 창궐하여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죽음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언제든 눈앞에 닥칠 수 있는 현실이었죠.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몽테뉴는 자연스럽게 삶의 유한성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절감했습니다.

시대의 아픔 외에도 몽테뉴는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비극들을 연달아 겪었습니다. 평생의 지기이자 정신적 동반자였던 에티엔 드 라 보에티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남동생도 세상을 떠났고, 아홉 명의 자녀 중 첫딸 외에 여덟 명이 어린 나이에 사망하는 슬픔을 겪었습니다. 심지어 자신 또한 낙마 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경험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위협했던 사고는 몽테뉴로 하여금 삶의 덧없음과 죽음의 실재성을 처절하게 느끼게 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관직에서 물러나 자신의 서재에 틀어박혀 성찰과 글쓰기에 매진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죽음이라는 주제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스토아 철학 등 당대의 다양한 사상을 접하며 그는 죽음을 회피하는 대신 정면으로 마주하고, 이를 통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죽음을 배우는 것, 곧 삶을 배우는 것

몽테뉴 철학의 핵심 중 하나는 "죽음을 배우는 것이 곧 삶을 배우는 것"이라는 통찰입니다. 그는 죽음을 단순히 삶의 마지막 순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에 걸쳐 함께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해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결코 비관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의 불가피성을 인식할 때 비로소 삶의 소중함과 현재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고 몽테뉴는 말합니다. 죽음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 우리는 흘려보내는 시간의 무거움을 느끼고, 주어진 순간을 더욱 의미 있게 살아가려는 의지를 다지게 됩니다.

그는 『에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삶을 발견한다."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 속에서 우리는 삶의 다양한 경험들을 쌓고, 관계를 맺고, 배우고 성장합니다. 죽음은 이 모든 과정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며,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걷어내고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살아있는'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좋은 죽음'을 위한 삶의 태도

몽테뉴에게 '좋은 죽음'이란 단순히 고통 없이 평화롭게 눈을 감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좋은 죽음'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삶 전체를 어떻게 살아왔는가와 깊이 연결된다고 보았습니다. 즉, '좋은 죽음'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주체적으로, 그리고 충실하게 살아낸 결과로서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의지와 통제력을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병이나 노쇠함으로 인해 정신과 육체가 무너져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게 되는 상태를 경계했으며, 삶의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맞는 죽음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몽테뉴는 "가장 고귀한 죽음은 자신의 침대에서 죽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투에서 죽는 것"이라고 말하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자세를 강조했습니다. 이는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방향을 정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나가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역설하는 것입니다.

죽음 성찰을 통한 자기 이해와 삶의 주체성

몽테뉴는 죽음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이 우리 자신을 깊이 이해하는 여정과 연결된다고 보았습니다. 삶의 유한성을 깨닫는 것은 곧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죽음이라는 최종적인 순간을 염두에 둘 때, 우리는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기준에 휩쓸리지 않고 진정한 자신의 욕망과 가치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죽음을 성찰하는 과정은 자신을 탐구하고 알아가는 지난한 과정입니다. 몽테뉴는 『에쎄』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탐색하고 기록했습니다. 이는 외부의 기준이 아닌 내면의 기준을 세우고, 스스로를 판단하며,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연습이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사색은 삶의 본질에 집중하게 만들고, 진정한 나를 발견하며 삶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는 확신에 차서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수용은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이어지고, 삶의 불필요한 불안과 두려움을 걷어내며 현재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죽음을 외면할수록 삶은 피상적으로 흐르기 쉽지만, 죽음을 직면할 때 삶은 비로소 깊이와 의미를 갖게 됩니다.

나가며: 현대인의 불안, 몽테뉴에게 길을 묻다

빠르게 변화하고 예측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다양한 형태의 불안에 시달립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 관계에 대한 불안, 존재 자체에 대한 불안 등... 이러한 불안은 종종 삶의 의미를 잃게 만들고 현재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몽테뉴의 죽음 철학은 이러한 현대인의 불안에 대해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는 죽음을 삶의 끝이 아니라, 삶 속에 늘 존재하는 그림자이며, 이 그림자를 직면하고 성찰하는 것이 오히려 삶의 가치를 드높이고 매 순간을 의미 있게 살아가도록 이끄는 원동력이라고 가르칩니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성찰하는 용기를 가질 때, 우리는 삶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현재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불안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몽테뉴의 『에쎄』는 시대를 초월하여 삶과 죽음,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며, 불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단단히 지탱하는 지혜를 전해줍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 그것이야말로 가장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일지도 모릅니다. 몽테뉴와 함께 죽음에 대해 사색하며, 당신의 삶을 더욱 깊이 탐구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